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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 나의 마지막 여정 — Sony WM-2, WM-DC2 그리고 WM-D6C

  • 2026.09.04 11:01
  • audio/portable

프롤로그 - 다시 시작된 워크맨 여정

 

몇 달 전 서랍 안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WM-D3를 발견하면서 다시 시작된 워크맨과의 여정은 순식간에 WM-D6C, WM-DC2, WM-2로 이어졌다. 그중에서 WM-DC2는 30년 전의 잡지속 사진이 떠올라 호기심에 구했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지금까지 들어본 워크맨 중 가장 인상적인 첫인상을 남겼다. D6C는 물론 D3 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는데 결코 작지 않은, 아니 거인처럼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작은 크기에 라인아웃단을 넣을 정도로 재생에 진심으로 만든 소니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멋진 워크맨이어서 평생 함께하며 좋은 음악을 재생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https://skylark.tistory.com/488

 

30년 전, 사진 속 그 워크맨 Sony WM-DC2

Prologue - D3, D6C를 지나 마지막 워크맨 여정 90년대 중반,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시절이었다.어느 날 우연히 펼쳐든 일본 음악잡지에서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사진 속에

skylark.tistory.com

 

 

 

 

 

WM-DC2, 1984년의 작은 플래그십

숫자로 보는 Sony Walkman의 주행 안정성

 

 

카세트테이프의 음질을 이야기할 때 흔히 헤드나 주파수응답부터 떠올리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테이프를 얼마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가 W&F(Wow & Flutter)다. 테이프 주행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졌다 느려지면서 발생하는 음정의 흔들림을 측정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안정적인 주행을 의미한다.

 

Sony의 고급 Walkman들을 같은 WRMS(NAB) 기준으로 살펴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인다. 1982년 등장한 WM-DD는 Disc Drive 메커니즘으로 0.08% WRMS를 기록했다. 1984년 WM-DC2는 여기에 Quartz Lock을 더하며 0.07% WRMS까지 낮췄다. 이후 녹음 기능을 갖춘 WM-D3와 1987년의 WM-DDIII 역시 0.08% WRMS라는 우수한 수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존재가 하나 있다. 같은 1984년에 등장한 WM-D6C다. 커다란 몸집과 녹음 기능 때문에 DC2와는 다른 종류의 기계처럼 보이지만, Sony가 발표한 W&F는 무려 0.04% WRMS다. 휴대용 카세트 레코더에 이 정도의 주행 안정성을 구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D6C에 'Professional'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1989년 최상급 모델 WM-DD9의 공식 수치는 0.13% WRMS다. 두 개의 모터와 Disc Drive, Auto Reverse를 구현한 구조 자체가 DC2와 다르기 때문에 W&F 숫자만으로 Walkman의 등급이나 음질을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영화처럼 다가 온 두 번째 WM-DC2

 

그렇게 한 대의 WM-DC2로 워크맨 여행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대의 DC2가 내 손에 들어왔다. 출발은 어느 날 새벽의 당근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 날, 잠을 깨려고 무심코 당근을 열었는데 정크 포터블 기기 네 대가 한꺼번에 올라와 있었다. 세 대는 Sony Walkman, 한 대는 단파 라디오였다. 모두 작동 여부를 모른다는 설명이었는데 그중 한 대가 WM-DC2였다. 세상에나, 당근에서 일주일 전에 영입했던 DC2를 또 만나다니...

 

판매자에게 DC2의 상세 사진을 부탁했다. 세월을 생각하면 외관은 제법 괜찮았다. 문제는 작동 여부였다. 수리가 가능여부 조차 알 수 없는 정크 기기를 또 들이는 것이 맞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첫 DC2에서 받은 인상이 워낙 강했던 터라 결국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가을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다행히 판매자분이  지난가는 길에 전해주셨는데 다른 기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DC2부터 꺼내 배터리를 넣었다.

 

아무 반응이 없다. ㅠ

 

결국 일주일 전에 구입했던, FF 버튼이 먹지 않는 첫 번째 DC2와 함께 두 대를 늘 오버홀 맡기는 그분께 보냈다. 점검 결과, 한쪽 모서리에 강한 외부 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었고, 그 충격으로 외장과 내부 구조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 있었다. 다행히 회로와 모터에는 큰 손상이 없어 오버홀을 거쳐 정상적으로 되살아났다.

 

센터기어와 타이어는 노후화되어 있었고 헤드 슬라이더는 파손되어 있어 이를 교체하고, 전체적으로 메커니컬 오버홀을 진행하셨다.

*외부 충격으로 데미지 입은 부분

 

 

 

 

 그리고  나흘 뒤, 두 대의 DC2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먼저 구한 것은 초기형, 당근에서 구한 것은 후기형, 같은 WM-DC2였지만 생산 시기가 달랐고, 내부를 들여다보니 헤드의 형태를 비롯해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수리를 마친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보니 궁금해졌다. 같은 이름으로 만들어진 두 DC2는 정말 같은 기계일까?

*왼쪽이 초기형, 오른쪽이 후기형

 

 

 

 

외관은 큰 차이는 없는데 가장 큰 차이는 헤드가 초기형은 뽀족한 모양이고 후기형은 약간 둥근 모양이다. 그리고 오픈 스위치가 초기형은 실버이고 후기형은 블랙이다.

*왼쪽 초기형, 오른쪽 후기형. 헤드 형상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위가 초기형, 아래가 후기형, 외관은 오픈 스위치 말고는 차이가 없다.

 

 

 

 

 

다시 라이카로 DC2의 옷을 입히다.

 

첫 번째 DC2를 Leica 렌즈 파우치에 넣었는데 만족스러워 두 번째 DC2에도 Leica 파우치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초기형과 후기형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파우치 색상만 다른 것으로 골랐는데, 역시 잘 어울리고 보호도 잘되어 만족스럽다.

 

 

 

 

그리면, 같은 소리를 들려줄까.

 

두 대의 DC2를 같은 테이프와 같은 이어폰으로 번갈아 들어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소리가 정말 좋았다. DC2 특유의 또렷한 음의 윤곽과 높은 해상력, 특히 고역에서 느껴지는 선명함은 두 대 모두 그대로였다. 어느 한쪽이 더 좋다고 쉽게 말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같은 구간을 여러 번 번갈아 듣다 보니 아주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초기형 쪽이 고역의 끝을 조금 더 또렷하게 세워주는 느낌이었다. 심벌이나 현악기의 어택에서 살짝 날이 서고, 음의 윤곽이 귀에 조금 더 분명하게 걸렸다. 후기형은 그에 비하면 아주 조금 부드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차이를 ‘초기형은 날카롭고 후기형은 따뜻하다’고 단정하기에는 두 대가 들려주는 소리의 공통점이 훨씬 컸다. 같은 DC2라는 이름 아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표정의 차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좋은지를 가려내는 데는 실패했다. 아니, 어쩌면 가려낼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둘 다 아주 좋은 DC2였다.

 

재미있는 것은 두 대를 오버홀해주신 분께서도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인상을 이야기했다. 두 대 모두 음의 해상력과 디테일은 기본적으로 뛰어나지만, "초기형은 조금 날이 서 있고 후기형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같은 음악을 번갈아 들어보니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두 대의 DC2를 비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남아 있는 다른 워크맨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책상 위에 WM-2와 WM-D6C를 함께 꺼내놓았다. 이제 네 대의 워크맨을 함께 들어볼 차례다.

*wm-2, wm-dc2(초기형), wm-dc2(후기형), wm-d6c

 

 

 

 

WM-2는 DC2나 D6C와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세 기기와 번갈아 들어보면 고역의 엣지와 음의 분리감, 주행 안정성에서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특히 DC2와 D6C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재생되던 일부 테이프가 WM-2에서는 속도가 불안정해지며 소리가 늘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WM-2의 매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기계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정밀하고 정확한 재생보다는 조금 거칠고 투박한 질감, 그리고 1980년대 초 Walkman이라는 물건이 가지고 있던 원초적인 재미다. DC2와 D6C가 좋은 카세트 플레이어라면, WM-2는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옛날 워크맨’에 더 가까웠다.

 

D6C는 DC2보다 음상이 크고 풍성하며 부드럽게 들렸다. 다만 DC2를 바로 듣고 바꾸면 고역의 윤곽과 엣지가 한 걸음 물러나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계속 음악을 들으면서 그 첫인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DC2가 음의 윤곽과 엣지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쪽이라면 D6C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DC2에 비해 고역의 날이 무디고 조금 부드럽게 느껴졌지만, 오래 들어보니 그것은 단순히 해상력이 떨어지는 소리와는 달랐다. D6C는 음을 억지로 앞으로 끌어내지 않는다. 중저역에는 충분한 살집이 있고 전체적인 소리는 풍성하지만, 어느 한쪽을 과장하지 않은 채 녹음된 소리를 차분하고 정직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음악이 복잡해져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DC2가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귀에 착착 붙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면, D6C는 음악 전체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좋은가의 문제는 아니었다. DC2에는 DC2만의 선명함이 있고, D6C에는 D6C만의 여유와 안정감이 있었다. 괜히 ‘Professional’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기계가 아니었다.

*같은 1984년에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WM-DC2와 WM-D6C.

 

 

에필로그 - 워크맨 여정을 마치며...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듣는 시간보다 다음 워크맨을 찾아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하나를 만나면 또 다른 모델이 궁금했고, 마음에 드는 소리를 만나고도 또 다른 소리를 궁금해했다. 그런데 오늘 네 대를 한자리에 놓고 차례로 음악을 들어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WM-2에는 오래전 내가 기억하던 워크맨의 모습과 질감이 있고, DC2에는 작은 몸집에서 믿기 어려운 선명함이 있다. D6C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풍성하고 안정적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같은 DC2 두 대조차 조금씩 다른 표정을 들려주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워크맨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워크맨 여행은 여기까지다.
이제 다시, 음악을 들을 시간이다.

 

 

PS.

 

나의 워크맨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WM-D3를 통해 인연을 맺은 WM-D6C님의 도움이 컸다. 이후 WM-D6C와 두 대의 WM-DC2 까지 정성스럽게 오버홀해주셨고, 그 과정에서 워크맨에 관한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오래된 워크맨으로 다시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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